구 분 운세론
제 목 황금돼지띠/ 쌍춘년



2007년 정해년(丁亥年)은 60년만에 한번씩 찾아오는 붉은돼지띠 해(年)이고, 이 붉은 돼지 중에서도, 지난해 2007년은 600년만에 찾아오는 황금돼지띠 해(年)라고 예부터 전해오는 속설(俗說)이 있다.

우리 이씨 조선시대(朝鮮)의 외침(外侵)과 탐관오리(貪官汚吏)들에게 시달리던, 민간신앙(民間信仰)을 믿는 일반 백성(百姓)과 불로장생(不老長生)하는 선계(仙界)를 믿고 공부하던 선인(仙人)과 도인(道人)들은, 60년 만에 한 번씩 찾아오는 정해년(丁亥年)의 붉은돼지띠라고 말하였는데, 이 60년 마다 찾아오는 정해년(丁亥年) 중에서도, 10번째 찾아오는 600년 되는 정해년(丁亥年)을 황금돼지띠 해(年)라는 것이다.

그런데 속설(俗說)대로라면 지난 2007년을 정해년(丁亥年)을, 600년에 한번 찾아오는 황금돼지띠 해(年)라고 한다.

예부터 우리 민간신앙(民間信仰)과 속설(俗說)에는 이런 붉은돼지띠가 찾아오는 해에 태어나는 아기는 두뇌가 좋으며, 장수(長壽)하는 아기들이 많다는 것이다.

붉은돼지띠 해에 태어난 아기도 복(福)되고 장수(長壽)한데, 황금돼지띠 해(年)에 태어난 아기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이 황금돼지띠 해(年)라는 것은 주역(周易)이나 역학적(易學的)인 근거(根據)는 없지만, 이씨 조선(朝鮮) 일반 백성(百姓)들의 민속신앙(民俗信仰)과 역학(易學)을 연구(硏究)하고 공부해 왔던 우리 선조(先祖)들에게 정해년(丁亥年)이 황금돼지띠 해로 전해오던 것이, 금세기(今世紀)들어서, 지나간 2006년의 쌍춘년{雙春年. 일명 <쌍춘절雙春節>}과 겹치면서, 더욱 사회적으로 관심(關心)을 끌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歷史的)인 사실(史實)에 그 밑바탕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씨(李氏) 조선(朝鮮)의 건국(建國)과 멸망(滅亡)

1392년 이성계가 왕위에 오름으로써 450년 동안 지속된 고려 왕조가 멸망하고 새 왕조 조선이 시작되었다.
1392년 즉위한 태조(太祖) 이성계에서 1910년 마지막 임금인 순종(純宗)에 이르기까지 27명의 왕이 승계하면서 518년간 지속되었다.

14세기 후반에 이르러 고려왕조는 권문세족(權門勢族)이 발호하는 가운데, 정치체제가 약화되고 왕권이 쇠퇴하였으며, 밖으로는 이민족(異民族)의 침입이 계속되는 등, 혼란을 거듭하였다.

이러한 때에 이성계는 여진족(女眞族) ·홍건적(紅巾賊) ·왜구 등을 물리쳐 명성을 높이며 중앙정계에 진출, 조준(趙浚) ·정도전(鄭道傳) 등의 신진사대부와 손을 잡고,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을 단행하여 구세력인 최영(崔瑩) 일파를 숙청하고, 또 전제개혁(田制改革)을 단행하여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마침내 1392년 7월 16일 개성의 수창궁(壽昌宮)에서 선양(禪讓)의 형식으로 왕위에 올라 나라를 개창하니, 이를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고도 한다.

1910年 庚戌年 한일합방(韓日合邦)으로 이씨(李氏) 조선(朝鮮)의 27대 왕(王)인 순종(純宗)이 완전히 일본에게 국권(國權)을 넘겨주고 완전히 역사(歷史)의 뒤안길로 사라짐.


정해년(丁亥年)은 60년에 한번씩 찾아오는데, 정해년(丁亥年)의 천간(天干)인 정(丁)은 주역(周易)에서 불(火)을 뜻하고, 색깔로는 적색(赤色 = 붉은색)을 나타낸다.

또한 지지(地支)인 해(亥)는 주역(周易)에서 물(水)을 뜻하며, 띠로는 돼지띠를 말한다.

천간(天干)의 정(丁)과 지지(地支)의 해(亥)가 만나는 해(年)가, 정해(丁亥年)인데, 이 붉은 색을 뜻하는 천간(天干)의 정(丁)과 돼지를 뜻하는 지지(地支)의 해(亥)는 곧 정해년(丁亥年)의 붉은 돼지띠를 나타낸다.

이 붉은돼지띠를 우리 조상들은 황금돼지띠라고 하였다.

정해년(丁亥年)은 가장 가까운 미래에는 2007년에 한번 찾아오고, 또 다시 61년 뒤인, 2067년에 또 다시 찾아온다.

과거로 흘러간다면, 지금부터 61년 전인 1947년이 정해년(丁亥年)이였다.

그런데 2007년 정해년(丁亥年)에서 602년 前인 1407년인데, 이는 태조(太祖) 이성계가 이씨 조선(朝鮮)을 건국(建國)한 지 15년째 되는 해로, 이성계가 아들이 방원에게 왕위(王位)를 물려주고, 왕위를 이어받은 태종(太宗)이 조정(朝廷)의 개국공신(開國功臣)과 원로(元老)들을 장악하였을 때다.

이에 자신을 가진 태종(太宗)은 안으로는 왕권(王權)을 확립하여, 밖으로는 북방(北方)의 청나라와, 여진족(女眞族)의 세력을 몰아내고, 남으로는 일본(왜구)을 압박할 때이다.

우리 조상들은 외침(外侵)에 시달리면서 악귀(惡鬼)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는 길조(吉兆)의 색깔로 붉은 색을 좋아했다.

우리 조상들은 이씨 조선(朝鮮) 중엽이후부터 생겨나는 조정(朝廷)의 극심한 당파(黨派)싸움과, 과중한 조세(租稅)와 왜구(일본)들의 잦은 노략질로 민심(民心)이 어지러워지면서, 고려(高麗) 말 때부터, 민간신앙(民間信仰)으로 깊이 뿌리 내려있던, 어질고 지혜롭고 강력한 새로운 왕(王)이 나타나서, 이 백성(百姓)들을 모두 구원받을 수 있다는 예언서(豫言書)인 정감록(鄭鑑錄)이나, 도선비기(道詵秘記)를 믿게 되었다.

이 도선비기(道詵秘記)와 정감록(鄭鑑錄)과 민간신앙(民間信仰)으로 전하여 지던 예언서(豫言書)들이 어울려지면서 붉은돼지띠해가 가장 살기 좋은 이상낙원(理想樂園)을 이루는 해이고, 이 때에 태어난 아기들도 복(福)을 많이 받고 장수(長壽)한다고 믿었다.

그러다보니 정해년(丁亥年)을 60년마다 기다리면서, 우리의 옛 조상들은 과거의 역대(歷代) 왕(王)들 중에서 어진 선정(善政)을 베푼 세종대왕(世宗大王)의 재위(在位)해 있는 동안을 가장 살기 좋은 시대(時代)로 생각하였었다.

그래서 세종대왕(世宗大王)이 생존(生存)해 있었던 시기(時期) 세종대왕(世宗大王)이, 충녕군(忠寧君)에 봉해지기 바로 전(前)나이 어린 1407년(태종 7년)인 10세가 되는 해였던 것이다.

세종대왕(世宗大王)의 이름은 도, 자는 원정, 시호는 장헌, 능은 영릉. 태종의 3자,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 비는 심온의 딸 소헌왕후.

세종대왕이 태어난 해는 1397년이며, 1408년(태종 8) 충녕군에 봉해지고 1413년 충녕대군(忠寧大君)에 진봉(進奉)되었다.

1418년 6월, 형 양녕대군이 세자의 자리에서 쫓겨나자 그 대신 세자에 책봉되어 태종의 양위를 받아 21세에 王位에 올라서 사망한 해는 1450년이니, 재위기간(在位期間)은 32년으로 세종대왕의 천수(天壽)는 53세이다.

세종대왕(世宗大王)은 당시의 평균 수명(壽命)이 40세 안 되었던 것으로 본다면, 상당히 장수(長壽)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자손(子孫)이 역대(歷代) 왕(王)들 중에서 가장 많았던 왕(王) 중에서 하나이며, 왕(王)으로서 재위(在位)하였던 기간도 길었고, 또한 가장 선정(善政)을 베푼 왕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중에서 제일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어려운 한문(漢文)을 배우기 힘든 일반 백성(百姓)들과 부녀자들이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우리 이씨 조선시대(朝鮮時代)에 살던 민중(民衆)들은 60년마다 돌아오는 정해년(丁亥年)의 붉은돼지띠 해를 <황금돼지띠 해>라고 격상(格上)시켜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과정에서, 민간신앙(民間信仰)과 어우러져서 언제부터인가 세종대왕(世宗大王)이 태어난 이후인 1407년 정해년(丁亥年)을 연결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當時)에는 인쇄술이 크게 발달되지 않았고, 또한 조정(朝廷)에서는 정감록(鄭鑑錄)과, 도선비기(道詵秘記) 등과 같은 예언서(豫言書)를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일으킬 반역(叛逆)의 책이라 하여서, 이를 소지하거나 읽는 사람은 역모죄(逆謀罪)로 다스리면서 금서(禁書)로 엄히 처벌하여, 일반 민가(民家)에서 귀하게 필사본(筆寫本)으로만 전하여지다가, 1910년 한일합방(韓日合邦)이후 조선통독부(朝鮮總督府)의 고구려(高句麗)의 역사(歷史), 고려사(高麗史), 조선사(朝鮮史) 등의 말살정책(抹殺政策)에 의하여 모두가 소각(燒却)되고 폐기(廢棄)되어 지금은 그 원본(元本)들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위 와 같은 2007년이 황금돼지띠라는 것이 학문적(學問的), 또는 역학적(易學的)인 근거(根據)가 미흡(未洽)하다고 하다라도, 분명한 것은 2006년 병술년(丙戌年) 쌍춘년(雙春年)에 결혼한 남녀(男女)가 예년 평균치 보다 10,000쌍 이상 많다는 점과, 이 결혼한 신혼(新婚) 부부(夫婦)와, 기존(旣存)에 결혼하여 자녀(子女)가 있는 부부(夫婦)들이, 2006년 쌍춘년(雙春年)을 맞이하여 임신(姙娠)한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우리 한반도(韓半島)에 2007년 태어날 아기들의 남북한(南北韓)을 따지면 예년보다 최고 40,000명이고 적어도 25,000명 이상이 태어날 것으로 보며, 남한(南韓)만 따져 본다도, 대략 2~ 30,000명 이상의 아기가 2007년정해년(丁亥年)에 태어날 것으로 본다.



          東洋哲學과 주역(周易)에서 말하는 쥐 띠(子生)의 性質과 氣運


우리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점치고 예언하는 것은 서양(西洋)은 노아가 하나님의 계시(啓示)를 받아 노아 방주(方舟)를 만들 때부터 시작하면서 아브라함이 하늘에 기도하고 계시 받으면서 점차 발전하다가, 구약시대(舊約時代)를 걸치면서, 성경(聖經)이 만들어 지면서, 한 개개인의 운명보다는 집단(集團)의 운명(運命)을 점쳐오고 예언해 왔으며, 개인의 운명과 미래는 각자가 하나님(여호와)께 기도(祈禱)로서만 의지하여 왔다.

그러나 동양(東洋)은 서양(西洋)과 반대로 지금과 같은 문자(文字)가 만들어 지기 이전부터인, 고대중국(古代中國)의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時代)라고 불리우던 하(夏), 은(殷), 주(周) 나라 때인, 기원전(紀元前) 고대국가(古代國家) 은나라 때 갑골문자(甲骨文字)가 만들어지면서 부터 왕조(王朝) 운수(運數)를 점쳐 왔고, 이 갑골문자(甲骨文字)가 진전(進展)하여 일반백성들도 배우고 사용할 수 상형문자(象形文字)로 발전하면서 개개인의 운명을 점칠 수 있는 수 많은 복서(復書)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은나라 이후의 왕조(王朝)인 주나라 무왕(武王)이 만든 복서(卜書) 중에서 동양(東洋)의 복서성경(卜書聖經)이라고 할 수 있는 주역(周易)이 만들어지고 체계화되면서 지금의 21세기에는 이 주역(周易)과 전세계로 퍼져서 점서(占書)로서가 아닌 철학, 과학, 문학적 가치로 수많은 과학자, 학자, 전문가들에 의하여 연구되고 인증(認證)되는 단계에 와 있으며, 우리 인류가 만든 책들과 가운데 서양 성경과 더불어 제일 오래된 보배로운 금서(金書)가 되었다.

주역(周易)과 동양철학(東洋哲學)에서 우리 대한민국 한반도를 나무의 기운(氣運)인 목(木)이라고 한다.

또한 쥐(子生) 띠는 오행(五行)에 따라서 다섯가지의 쥐 띠가 있다. 그 다섯 가지의 쥐띠의 첫 번째가 갑자생(甲子生)으로, 1984년에 태어난 사람과, 1984년으로부터 60년 前인 1924년생이 있다.

그런데 2008년에 태어나는 쥐 띠는 무자생(戊子生)이라고 하는데, 주역에서 말하는 육십갑자(六十甲子)에서 제일 처음으로 시작하는 갑자년(甲子年)으로부터 병자년(丙子年) 다음인 세 번째로 무자년(戊子年)이라고 한다.

이 무자생(戊子生)은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에 출생한 1948년생이 있고, 앞으로 60년 후인 2068년에 태어날 무자생(戊子生)이 있다.

그런데 2008년의 무자년(戊子年)은 벽력화(霹靂火)라고 말하는데, 이는 하늘의 번갯불을 말한다.

또한 모든 쥐 띠는 수성(水性)으로서 물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벽력화(霹靂火)의 번갯불은 물의 기운인 수성(水性)을 만나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모든 쥐 띠들은 2008년의 무자년(戊子年) 운세를 본다면, 하늘의 벽력화(霹靂火)의 기운(氣運)을 받을 것이며, 땅(大韓民國)으로는 나무의 기운인 나무인 목(木)과 더불어, 물의 기운인 수(水) 생(生) 목(木)하니, 크게 힘을 발휘할 것이다.




 
<% rs.Close dbcon.Close Set rs = Nothing Set dbcon = Nothing %>